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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0년 교회연극 금관의 예수, 빛바랜 소책자가 불러낸 청춘교회이야기 2026. 3. 21. 20:33반응형
1990년 4월 26일, 교회 청년들과 함께 올린 연극 〈금관의 예수〉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을 환하게 밝혀주었다. 나는 순경 역할을 맡았다. 제복을 입고 무대에 서 있었지만,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그림자를 품은 목소리였다.
지금도 잊지 못하는 대사가 있다.“돌에 맞아 시퍼렇게 멍든 내 가슴팍을 본 적이 있어? 나도 살아야 하잖아. 나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. 나도 사람이잖아.”
그 말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었다. 무대 위에서 나는 억압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, 그 속에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. 그 목소리는 내 청춘의 고뇌와도 겹쳐져, 무대 위의 순간이 곧 내 삶의 고백처럼 느껴졌다.
출연진 배역 경북 영주, 내 고향에서 다녔던 영주제일교회 장로님 중 한 분이 관객들에게 배포했던 "금관의 예수" 소책자를 오래도록 소장하고 계셨다. 그 소책자는 교회 역사관에 기증되었고, 지금도 고향에 남아 교회를 섬기며, 그당시 연출을 맡았던 선배가 그 소책자를 사진으로 찍어 내게 보내주었다. 빛바랜 소책자의 사진을 보는 순간, 36년 전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. 그때의 공기와 웃음, 땀과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고, 나는 이 감정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.

영주제일교회 역사관에 기증된 소책자, 연출 선배가 찍어 보내준 사진 〈금관의 예수〉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을 외면하는 권력자, 종교인들을 무대 위에 세웠다. 무대 중앙에는 금관을 쓴 예수가 시멘트 속에 갇혀 있었고, 그는 가시관을 쓰고 민중과 함께하려 했지만 결국 다시 금관을 씌워진 채 굳어버리고 만다.
그 장면은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.
• 진정한 예수는 영광의 금관이 아니라, 고난의 가시관을 쓰고 민중과 함께한다는 것.
• 권력과 종교가 약자를 외면할 때, 신앙은 본질을 잃는다는 것.
• 그리고 그 속에서 순경이라는 인물은 억압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를 품은 존재였다.나는 20대로서 군대 가기 전 휴학 중이라 시간이 많았지만, 선배들은 직장에서 하루를 마치고 저녁이면 교회로 모여 연습을 이어갔다.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무대 위에서 빛나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. 몇 달 동안 이어진 저녁 연습은 단순히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, 서로의 삶을 나누고 믿음을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의 시간이기도 했다.
연극 당일, 관객들에게 나눠줄 소책자를 우리가 직접 만들고 배포했다. 그 소책자가 36년 만에 다시 내 손에 들어왔을 때,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시절의 공기와 웃음, 땀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.연극이 끝난 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고 36년이 지났다. 이미 작고하신 분도 있고 전혀 소식을 모르는 분도 있다. 하지만 그때의 열정과 웃음, 무대 위에서 함께했던 긴장과 환희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. 소책자를 다시 마주한 순간,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.“너는 그때도 진심으로 살았고,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.”
세월은 흘러 우리는 이제 60세를 바라보거나 넘겼다. 그 얼굴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고, 그 시절의 청춘이 내 안에서 다시 숨을 쉰다. 작은 소책자가 내게 다시금 청춘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듯,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그 시절의 열정과 공동체의 힘이 전해지기를 바란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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